- ECM 전시회 - (11월 21일 메모)

음악의 호흡. 모든 음이 호흡처럼 느껴지는 그런 감동이 있었다.
여리더라도, 때론 두서없이 흩어져 있어도 온전한 그 사람의 세계가 엿보이는 음악.
또한 자켓이 만들어 낸 여백의 질감과 모호함이 탐욕스러울 만큼 아름다웠다.

어렸을때 ECM 음악에 미친듯이 빠져들었던 그때와는 다른, 이미 성숙해졌고 내 자신이 무얼 얘기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지금의 어른이 되어서 느끼는 감정은 너무 달랐다.
요컨데 자유로움에 대한 부러움.
잊고 지냈던 침묵에 대한 갈증과 그 자유에 동경과 질투가 뒤엉켜 참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나왔다.

정말 절실하다. 오히려 분명해 진걸까.
끈질기게 반복되는 폭풍을 멈추게 하려고 때론 설명하려고 별 노력을 다해봤지만 이젠 그냥... 두서없고 때론 과하고 무슨소린지

알 수 없게 들릴지라도 그게 그냥 나라는 사람인걸 오롯이 음악에 담고 싶다.
어짜피 나란 사람이 그렇고, 완벽해질 수 없으니.

 

 

 

-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

 

2006년 겨울은 한양대 안에서 백남 음악관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땐 내비게이션도 없었고 차도 없었으니.

한손에 노트를 옆구리에 끼고 바람이 술술 통하는 낡아빠진 야상을 입고선 욱재와 지하철로 묵묵히 왔던 기억이 났다.

지금은 친절히 길안내를 해주는 내비도 있고 3년 넘게 잘 타고 있는 흰둥이도 있지만 어쩐지 그 때가 더 좋았던 마음이 들었다.

혼자 와서일까.

 

좀 늦는 바람에 원이한테 한소릴 들은 후에 내가 맡은 업무를 보기 시작했고 로비를 가득 채운 인파 속에서

역시 우리가 나서니까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져서 좋다, 는 생각과 많은 사람들 앞이라 굉장히 낯설은 기분이 교차했다.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잘 나아지지 않는건 똑같구나.

대회가 시작된 후엔 정말 숨도 쉬지 않은 기분이 들만큼 집중했다. 참가자들의 떨림, 미묘한 감정에 집중했고

그 흐트러짐과 모아짐을 느끼려, 또 멜로디와 가삿말이 담은 이야기에 숨죽이고 귀 기울였다.

참 하나하나 훌륭하구나. 자기의 깊은 세계가 있구나. 때론 부럽고 때론 아쉽고.

그 곳의 공기를 나는 어떻게 견뎠는지 이젠 생각도 안나지만 끝났을때 난 너무 후련했고 욱재는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이번 대회 중에 나랑 같이 힘든 입시전쟁을 치뤘던 제자의 노래가 무척 반가웠다. 맞아, 그때도 너무 좋다고 기뻐했는데. 

그대의 우주. 그래, 넌 정말 체구도 작고 목소리도 작아서 항상 아기 같았지만 노래를 만들고 할 때 만큼은 그 안에 우주가 보였어.

장하다 애썼다. 동료뮤지션들 다 너 얘기 하고 난 자랑스럽게 떠들고...그렇게 뮤지션이 되는거야. 근데 떠는건 또 왜 날 닮았니.

 

대회를 마무리하고 다같이 모인 아쉬운 사람들끼리 신나는 뒷풀이. 오랜만에 김현철 선배님과의 조우. 전화 씹는다며 욕먹고

혼나고 했지만 애정이 있으시니 감사한걸. 근데 너무 취하셔서 몰래 자리를 피하고. 욱재 지은누나 진환이형 원이랑 또 쓸데없는 얘기들

하고 깔깔대며 웃고 떠들고...준일이랑 영찬이 뒤늦게 와서 얘기 나누고 정말 오랜만인 규호형과 인테리어 얘기에 꽃 피고...

규호형이 벽지는 깔끔한게 가장 좋다며 천장에 바르는 걸 발라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주셨지만 이미 공사 끝났기에 일년 뒤 또 다짐.

2차에서는 다들 노래 한마당. 달달한 옥수사진관 선배님의 노래, 배영경님 루빈님의 노래와 정말 감동이었던 만취한 지찬이형의

신곡. 아 너무 좋았다. 나도 얼른 노래 만들어야지. 언제나 슈퍼스타가 되는 한철이형의 슈퍼스타 떼창. 엉망진창이었던 우리의

끝나지 않는 노래까지. 눈알이 빠질만큼 피곤했지만 가는 길 내내 생각했다. 끝까지 난 왜 느슨해지지 못할까. 나름 많이 바뀐것도

같은데 아직도 많이 자유롭지 못하는구나. 정말 나를 내려놓자. 하나하나씩...

 

 결국 아파서 아침에 예비군을 못가고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고서 정신이 들었다.

예비군은 나를 정말 싫어할꺼야

뭐 괜찮아 나도 싫어하니깐...

 

그건 그렇고 많이 추워졌구나. 겨울의 가장자리에서 이젠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는게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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